여보, 나도 이제 ‘평생 세금쟁이’ 됐네

거듭 이야기하지만 능력도, 지혜도 부족한 필자에게 하나 내세울 것이 있다면 그저 맡겨준 일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보자는 ‘뚝심’ 하나라고나 할까?

당시 국보위 파견근무를 하면서도 비록 하찮은 6급이지만 어떻게 하면 이런 힘있는 조직을 이용해서 그동안 우리 국세청에서 풀 수 없었던 난제들을 해결해 볼까? 하는 궁리만을 했었다.

그동안 10여년의 짧은 세금쟁이 생활을 해오면서 나름대로 겪었던 각종 불합리한 세금 관련문제들과 이에 대한 개선방안들을 소신껏 마련해 보았다. 심지어 세무사제도까지도 포함시켰다.

이렇게 하여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마련한 조세행정 개혁방안을 재무위원회 간사위원에게 보고했으며, 앞으로 있을 재무위원회를 거쳐 국보위 상임위원장에게까지 보고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해 10월말(末)경 그만 국보위가 갑자기 문을 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진행하고 있던 모든 업무들은 청와대 해당 비서관실로 인계하라는 지시가 떨어진 것이었다.

다행히 우리 팀의 팀장이셨던 오혁주 국장께서 청와대 재경비서관으로 영전하게 되어 우리 팀에서 추진하던 조세행정 개혁방안에 대해서는 손쉽게 인계할 수 있었다.



그즈음 오혁주 비서관께서는 필자에게 청와대로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제의하셨지만 저같이 부족한 사람은 갈 자격이 되지 않는다고 정중히 말씀드렸다.

청와대로 가려면 아무리 못해도 사무관급은 되어야 하는데…,

그래서 필자는 국세청으로 다시 원대복귀하였다.

그래도 내게 맡겨준 업무를 마무리하기 위해서 자주 그 분의 호출을 받았는데 그 때마다 내 나름대로 열심히 그 분을 보필해 드렸다.

지금 생각이지만 만약 그때 필자가 무리를 해서라도 청와대로 자리를 옮겼더라면 당시 필자가 마련했던 개선방안 중 최소한 몇가지는 실행이 됐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몇개월간의 파견근무 중에도 빨리 시행돼야 할 한두가지 불합리한 세제문제는 소관부처인 재무부 세제실과 합의가 되어 빠른 시일내 입법조치가 됐으며 지금까지 잘 시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예를 들면 상속세법 중에 상속 개시일(사망일)로 부터 소급해서 1년 또는 2년이내 재산을 처분한 금전이 어디에 사용되었는지 명확하게 소명이 안 되는 부분 중(中) 일정 금액이상에 대해서는 이를 상속재산으로 보도록 하는 규정을 신설하는 문제는 당시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가에서도 이미 시행하고 있는 제도였기 때문에 보다 시급을 요했다.

그 전까지는 분명히 사망일 현재 상속 재산인 데도 상속세를 안 물기 위해 돌아가시기 몇개월 전에 서류상 다른 사람에게 처분한 것으로 위장했다던지 은행 예금인 경우, 돌아가시기 몇일 전에 은행에서 인출해서 다른 사람 명의로 예금을 하거나 부동산을 다른 사람 명의로 매입해 두면 자금 추적이 어려워서 상속세를 제대로 매길 수가 없었다.

어쨌든 새롭게 신설된 이 규정은 지금까지 30여년이 지나오면서 그동안 많은 진전을 거듭해 오면서 공평과세와 세수증대 측면에서 크게 기여해 온 것으로 알고 있어 퍽 다행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사생활 없이 오로지 일에만 매여 있는 필자는 그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세법과 회계학 그리고 재정학 공부를 해 왔었다.

왜냐하면 당시 필자의 당면 과제는 세무사 자격증을 따는 것과 사무관 승진 문제였다.

그래서 국보위에 파견되기 전까지는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젊은 학원 강사 한 분을 교섭하여 국세청 부근에 어떤 사무실을 빌려 하루 한두시간씩 개인교습까지도 받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세무사 자격 시험에 합격하면 진급을 위한 근무평가를 할 때 일정점수의 가산점(1점)을 주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6급 공무원인 나는 여기에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아내와 두 자녀가 있는 가정 생활에도 충실해야 하는데, 매일 사무실 아니면 책과 씨름하고 있었으니 아내와 자녀들 불만이 보통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무엇보다 당시 같은 집에서 내가 모시고 있던 아버지께서 식도암이 발병되어 병원도 아닌 필자의 집에서 투병하고 계셨으니 오죽 했으랴.

식구들에게는(특히 아내에게) 미안하지만 내 장래를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이라고 했던가?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정신없이 주경야독(晝耕夜讀)하면서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시간을 활용했었다. 

그 해 82년 여름에 있었던 세무사 자격시험을 치르고 난 후 필자는 시험에 대해서는 까마득히 잊고 오로지 국보위 조세행정 개혁방안 마무리 업무에만 매달렸었다.

그런데 그 해 11월 어느 날 제 19회 세무사 자격 시험에 합격했다는 뜻밖의 기쁜 소식이 온 것이다.

그 날 세무사 합격증을 받고 제일 먼저 사랑하는 아내와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그랬더니 정말 마음고생이 많았던 아내가 하는 말이 “여보! 당신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더니만 합격했네요. 축하해요. 이젠 죽을 때까지 실업자 신세는 면했네요, 그동안 나도 몹시 힘들었지만 일단 합격했으니 기쁘네요.”

옆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영문도 모른 채 일단 합격했다는 소식에 진심으로 기뻐하셨다.

그 무엇보다 그 해 연말 보름간의 미국 해외출장을 가기 위해 출국 비행기에 오른 필자의 마음은 왜 그렇게도 홀가분했던지 여기에다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으니….

그 때 온 세상이 다 내 것만 같았다.

“여보! 나도 이제 평생 세금쟁이 됐네…” 

 -매주 水·金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