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세자와 힘든 씨름, 친구와의 소중한 추억 

세무서 옆 친구가게는 아지트?

필자는 복직후 1년만에 용산세무서 개인세과에서 광화문세무서 개인세과로 자리를 옮겼다.

내 마음으로는 법인세과로 배치받아 세법 전반에 대한 체계적인 실무를 익히고 싶었는데 비교적 업무가 단순하다고 생각되는 개인세과로 가게 되니 혹시 이러다가 ‘개인 세금통(通)’으로 빠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일선 세무서의 조직은 크게 세금을 매기는 부과과와 지원업무를 맡고 있는 비(非)부과과로 나눠졌는데 직원들 대부분은 부과과 중에서도 법인세 분야를 가장 많이 선호했으며 그 다음이 개인세과와 조사과 순이었다. 그래서 기피부서로 알려진 총무과 근무만 아니어도 감사해야 했다.

원래 세무서란 세금을 법대로 부과해 무리없이 잘 거둬들이는 일선 집행 관청이다. 그리고 유능한 세금쟁이란 세금을 잘 매겨서 책정된 세금을 체납없이 잘 거둬 들이는 공직자를 말하는 것으로 지금이나 그때나 조직 원리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또다른 부서 직원들도 마찬가지이지만 부과과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무엇보다 부지런해야 하고 또 건강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충분한 휴식도 필요한데 실상은 몹시 힘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휴식을 취할 시간과 장소가 있어야 했으나 실제로 사업장에 나가서 납세자와 씨름(?)을 하다 보면 정말 스트레스도 받고 피곤할 때가 많았다.



당시 필자는 광화문 세무서 개인세과에서의 2년 근무 중 1년간은 개인소득세 업무를 나머지 1년간은 개인영업세 업무를 맡게 됐는데 나는 직급이 낮아서 인지 몰라도 세원은 적은데 반해 지역은 넓은 곳을 맡게 됐다.
직접 걸어다니다 보니 힘도 많이 들었다. 밀린 세금독촉도 해야 하고. 또 직접 받은 체납세금을 바로 은행에 가서 불입도 해야 하는 등 하루하루가 매우 고달팠다.

당시 필자는 다행히 중학교 다닐 때 가까이 지내던 한 친구가 우리 세무서 옆에서 주류 도매상을 하고 있었는데 사업장에는 방도 하나 있고 사무실, 그리고 주류를 쌓아 놓는 창고도 있었다.
가끔 짬을 내어 친구의 사무실에 가서 눈을 붙이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하다 보니 개인세과에서 함께 근무하는 선배들도 한둘 합류하게 됐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우리들의 아지트(?)가 돼 버렸다.
이곳에서 휴식도 취하고 잡무도 보게 되니 그 친구에게는 미안하지만 우리 동료 선배들에게는 여러가지로 편리한 점이 많았다.

어떤 때는 친구의 사업장에 있는 전화로 세금을 못 낸 사업자에게 전화 독촉도 하게 되고, 무엇보다 세무서 사무실에서 전화가 오면 신속하게 세무서로 들어갈 수 있는 위치에 있어 여러모로 편리했다.
그런데 필자 혼자일 때는 그런대로 참고 견딜 것 같았는데 그 아지트를 이용하는 선배들이 몇명으로 늘게 되니 어떤 때는 필자가 그 친구에게 퍽이나 미안했다. 그런데도 그 친구의 얼굴 표정에는 내가 생각하던 그런 불평하는 모습이 아니고 오히려 선배들을 나보다 더 잘 대해 줬다. 그런 일이 자주 있다 보니 아예 그 친구는 나보다 선배들과 더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가끔은 친구가 그들과 함께 화투놀이도 하게 됐다고. 물론 도박 수준은 아니고 저녁 값 내기 정도였지만….

그래도 필자는 다소 불안했다. 혹시나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게 됐다. 원래 세금쟁이는 공직자 신분으로 자기관리를 잘해야 하고 무엇보다 납세자들의 원성을 듣지 말아야 하는데….
그러나 어쩔 수가 없었다. 사생활이 없는 세금쟁이의 현실을 실감하면서 필자 또한 자연히 그런 흐름에 차츰 동화돼 가고 있었다.

어쨌든 2년간의 광화문 세무서 개인세과의 고된 생활에서 필자는 그 친구의 큰 도움으로 다른 동료 선배들에 비해 비교적 빨리 일처리를 하게 됐으며, 또 효율적으로 시간관리도 할 수 있게 됐다.

그 후 그 친구는 인근 서린동에서 자신의 누나와 매형이 직접 개척한 우리나라 낙지집의 원조 ‘Y낙지식당’을 인수받아 사업을 크게 번창시켰으며 지금도 수도권 일대에서 여전히 음식사업을 잘하고 있다.

지금은 가끔 전화로 안부를 묻는 사이지만 그때 그 이야기를 할 때면 그만 깔깔거리고 웃으며 아름다웠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곤 한다.
“사랑하는 내 친구 김재홍! 고맙다. 부디 건강하게나!”

<계속> -매주 水·金 연재-